나이들고 늙으면 뭐가 좋냐
젊게 살다가 때되면 바로 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진화와 유전자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화로 인한 기능 정지가 종 전체에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람처럼 폐경을 겪는 고래를 보자. 왜 죽을때까지 생식기능이 유지되지 않고 중간에 정지되는 것일까? 동물은 죽기전까지 하나라도 더 낳으면 좋은거 아닌가?
고래와 같은 모계중심사회에서는 할머니 고래들의 지식과 경험 전수가 매우 중요하다.
수유시기 뿐만 아니라 젖을 뗀 새끼 고래를 돌보는 일도 어미의 몫이다. 수염고래 새끼는 태어난 첫해 어미를 따라 열대바다에서 극지방 먹이터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어미가 가르쳐 준 경로를 익혀 되풀이한다. ‘전통 지식’을 전수하는 셈이다. 이동지식뿐 아니라 새로운 사냥지식도 어미를 통해 전수된다. 혹등고래가 바다 표면에 꼬리를 내리쳐 물고기를 사냥하는 신기술은 모계로 전해진다.
특히 모계로 집단생활을 하는 생물종들은 자기가 직접 후손을 낳는것보다 젊은 고래들에게 출산을 맡기는 것이 유리하다. 할머니고래들은 엄마고래가 사냥을 나간사이에 아기고래를 돌보는 역할분담을 하게된다. 나이 든 암컷은 생식을 젊은 암컷에게 넘기고 자신은 돌봄에 치중함으로써 무리에 기여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돌고래종들은 수컷보다 암컷 아기를 우대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 큰돌고래는 바로 옆에서 헤엄치는 새끼 돌고래를 배려해 자신의 잠수시간을 줄이는데, 그런 배려는 새끼가 암컷일 때만 나타났다. 또 사냥기술을 전수할 때도 아들보다 딸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은 가문을 위해 장남에게 몰아주자는 풍조가 있다면, 돌고래들은 가문의 문주가 될 장녀 돌고래한테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생식 기회를 버리고 자식과 손주 지원에 나서는 진화적 이점은 동물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영국 엑시터대 진화생물학자 대런 크로프트 등은 2012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 36년 동안 북서태평양 범고래를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범고래의 어머니가 죽으면 30살 아들이 이듬해 죽을 확률은 14배로 뛰었다. 범고래 수컷은 커서도 ‘마마보이’였다. 할머니 범고래는 무리를 이끌며 먹이 찾기, 포식자 감지, 문제 해결, 이동, 집단 내 갈등 해소 등에 기여한다.
폐경을 하지 않는 돌고래도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새끼 양육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데 40대 초반 마지막 출산을 하고 보통 40대 후반에 수명을 다한다. 늦둥이의 사망확률이 높으므로, 늦게 출산하는것보다 젊을 때 낳은 건강한 새끼를 길게 키우는 번식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위 그래프를 볼때, 다른 영장류와 사람이 확연히 다른점은 사람은 수명 대비 훨씬 이른 나이에 폐경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고래 특유의 사회적 진화 결과가 아닐까. 노화는 퇴화가 아니고 자연적인 역할변경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고래 외에도 망코개원숭이,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에서도 나이든 개체에 대한 존중을 발견할 수 있다. 무리가 이동할때 늙은 수컷원숭이가 뒤따라가지 않으면 젊은 리더 원숭이는 할배원숭이의 눈치를 살핀다. 눈짓과 의사교환을 통해 먹잇감,물을 찾고 숨어있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 어느 경로로 가야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할머니코끼리는 반대로 늘 앞장서서 무리를 이끈다. 코끼리 사회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할머니 코끼리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다 큰 수컷코끼리들은 무리에서 추방되거나 묵묵히 뒤를 따를 뿐이다.
나중에 도서관에 들릴 일이 있으면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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