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만에 홍콩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통일 방안을 강요하며 온갖 압박을 가했지만 대만 유권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중 진영 쪽을 택했다.

 

2020년 1월 11일 치러진 대선에서 대만인들은 '주권 수호'를 주장한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에게 표를 몰아줬다. 20%p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승리다. 차이잉원은 4년 임기인 총통직을 계속 맡아 2024년까지 대만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지난 홍콩 선거에서 반중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데 이어 대만 유권자들까지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을 선택한 것은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국양제를 바탕으로 대만을 독립국이 아닌 '미수복 지역'으로 간주하는 중국에 대한 반발이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야심찬 '중국몽'(中國夢) 추진에도 적잖은 타격이 가해졌다.

 

반중파인 차이 총통의 재선을 원치 않는 중국은 작년부터 대만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대만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노골적인 시위를 했다. 시진핑은 작년 1월 대만에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면서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직접 대만을 압박했다.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만일의 경우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국의 기존 입장이기는 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직접 작심하고 말을 꺼냈다는 점에서 대만인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뿐만 아니라 이를 기점으로 군사·외교·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중국 전투기가 1991년 이후 근 20년 만에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항공모함을 포함한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훈련을 시작했다. 중국의 외교 공세 속에 작년엔 키리바시와 솔로몬제도가 대만과 단교했다. 차이 총통 취임 후 총 7개국이 대만과 단교해 현재 대만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15개국 뿐이다. 중국의 최대 전략목표는 대만의 외교적 고립으로 국가 자격을 박탈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작년 8월부터는 자국민의 대만 자유 여행을 제한함으로써 대만에 연간 1조원대의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한한령도 그렇고 이놈들은 관광 금지가 아주 그냥 전가의 보도다. 작년 초부터 대만 선거 운동이 시작됐는데 중국의 이같은 행보는 차이 총통이 속한 민진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의도를 1년내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압박은 대만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효과를 냈다. 2018년 11월 지방선거 패배로 위기를 맞던 차이 총통을 정치적으로 부활시켜준 공신이 됐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압력에 대항하며 대만의 주권을 지키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작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운동은 대만에서 반중(反中) 정서가 급속히 커지는 데 결정타를 가했다. 홍콩에서 벌어진 반중 시위는 대만인들에게 '오늘의 대만이 내일의 홍콩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중국 정부와 시진핑에 대한 반대 여론이 완전히 굳어졌다. 

 

 



차이 총통은 홍콩 시위 초반부터 홍콩 시위대 지지와 일국양제 반대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 결과 작년 여름 무렵부터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국민당의 유력한 주자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의 지지율을 추월하면서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대만의 미래는 대만인이 결정한다. 이번 선거는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당할 때 대만인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11일 오후 9시(현지시간) 대만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차이잉원 총통이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밝힌 발언이다. 첫 소감부터 중국을 겨냥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기자회견의 절반 이상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관한 메시지였다. 중국이 일국양제,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기할리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 양안 관계가 험난함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차이 총통은 "선거를 통해 대만 국민은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를 거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만은 공정하고 동등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등,평등을 강조하는게 몹시 의미심장하다.

반중 독립성향 정권의 재선으로 중국은 '중국몽(中國夢)' 구상에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6월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가 아직도 있는 데다 대만마저 차이 총통이 압승을 거두면서 일국양제와 중국통일 계획이 통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12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며 "대만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전 세계에서 단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마샤오광 대변인도 "평화통일과 일국양제 방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며 "중국은 어떠한 형식의 대만 독립과 분열 시도에 대해서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차이 총통을 겨냥해 '대만 독립'이라는 급진적 사고를 바꾸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12일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차이잉원 총통이 대만을 (통일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끌고간다면 양안 사회가 외면할 것이며 결국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만에 대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현재 대만과의 수교 국가는 15개국밖에 남지 않았는데 중국이 추가 단교를 통해 대만을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며 "대만해협 상공에서 군용기를 동원한 위협 비행을 검토하는 등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차이잉원 총통 이력

△1956년 8월 타이베이 출생

△1978년 대만국립대 법학 △1980년 미국 코넬대 법학 석사 △1984년 영국 런던정경대 법학 박사 △1993년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

△2004년 민진당 입법의원 △2008년 민진당 주석

 

△2016년 14대 대만 총통

△2020년 1월 15대 대만 총통 당선

 

 

일부 강경 독립파 인사들은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대만'으로 국호를 바꿔 독립을 선언하자고 주장하지만, 다수 대만인들은 독립도 통일도 아닌 '현상 유지'를 가장 선호한다. 어차피 정면으로 싸워봤자 게임이 안된다. 중국을 향한 다수 대만인의 요구는 '독립을 인정하라'가 아니라 '그냥 우리를 이대로 내버려 달라'에 가깝다. 

대만이 먼저 중국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가만히 있는 대만에 일국양제를 강요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만인들의 인식이다. 뭐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고.

홍콩사건과 함께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만이 뜻하지 않게 큰 수혜자가 된 것도 차이 총통의 재선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를 우려해 중국을 떠난 다시 대만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대만의 작년 3분기 경제성장률(2.9%)은 '아시아의 4룡'인 홍콩(-2.9%), 싱가포르(0.1%), 한국(2.0%)보다 높았다.

 

한편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중국 압박 카드로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중국의 대만 군사 압박에 맞서 미국은 거의 매달 군함을 대만해협에 통과시키면서 중국의 대만 공격을 놔두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대만에는 4차 IT 산업에서 중요한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1위 업체 TSMC가 있는 것이 크다. 극단적인 중미 산업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미국에서 공급받기 힘든 첨단 전자부품을 화웨이 등에 제공해줄 전략적 공급처가 필요한데 그게 대만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꼭 손에 넣어야할 첨단산업기지다.

 

무엇보다 하나의 중국을 꿈꾸는 시진핑에게는 정치적으로 홍콩 이상으로 중요한 곳이다. 중국이 집착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 기조는 대만이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이뤄질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중국은 길어봐야 약 5백년씩 여러 민족들로 번갈아 집권세력이 바뀌어왔기에, 그 계기가 될 균열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 역대 중국왕조 

하나라 BC 2070~BC 1600

은나라 BC 1600~BC 1046

주나라 BC 1046~BC 771

춘추전국 BC 770~BC 221

진나라

한나라 BC 206~AD 220

위진남북조 221~589 (삼국지 220~280)

수나라 581~618

당나라 618~907

송나라 960~1279

원나라 1260~1368

명나라 1368~1644

청나라 1616~1912

중화민국 1912~ (신해혁명)

중화인민공화국 1949~ (국공내전 승리, 마오쩌둥)

 

대만은 자신이 중화민국의 정통 승계자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공산당의 반란으로 세운 불법정권으로 간주한다. 또한 (이뤄질수없는) 본토 수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화인공과 중화민국 용어가 자꾸 헷갈리기때문에 차이잉원 때부터 대만을 강조하여 '중화민국 대만' (中華民國 台灣)이라는 새로운 국가 호칭을 도입했다.

 

Posted by 영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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