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위가 1위를 인수하는 희한한 합병이 벌어졌다.

 

국내 배달앱 2위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가 국내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을 인수한다. 국내 1, 2위 배달앱 업체가 합쳐지면서 사실상 독점적인 선두업체로 올라섰다. DH와 우아한형제들은 이번 인수와 함께 아시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기로 했다. DH는 유럽, 아시아, 중남미, 중동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온라인 음식배달 서비스를 운영 중인 글로벌 기업이다. 

 

3위업체인 배달통은 2014년에 이미 DH가 자금 투자로 지분을 사들였고 최대 주주가 된 바 있다.

 

DH는 우아한형제들의 전체 기업가치를 40억 달러 (4조 7500억원)으로 평가하고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한다. 이번 딜은 국내 인터넷 기업의 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일각에선 20조원대로 추산된 국내 배달음식 시장 규모에서 배달의민족이 전체 거래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립초 기업가치가 100억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가치가 400배 뛴것이다.

 

 

 

한국 포함 아시아의 배달앱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 양 측이 손을 잡는 배경이 됐다. 한국의 음식 배달 시장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아직도 전화 주문이 배달 앱 사용보다 훨씬 많다. 업계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시장 확장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대형 IT플랫폼들에게 잠식당하느니 덩치를 키움으로서 국내 시장을 지키고 해외 진출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뜻이다.

 

양측이 손을 잡음으로써 앞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그랩(Grab), 우버이츠(UberEats), 고젝(Gojek) 등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과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랩과 우버이츠는 일본계 거대 자본이 투자한 업체들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유럽과 아시아, 중남미, 중동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온라인 음식배달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대만, 라오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등이다.

 

이번에 매각하는 우아한형제들 지분 87% 이외 잔여 지분 13%는 추후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DH 경영진 가운데 개인 최대 주주가 되며 DH 본사에 구성된 3인 글로벌 자문위원회의 멤버로 활동할 계획이다. 이건 독일에 상장한 것과 같다는 황당한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는데, 인수합병되고 타그룹에 '자회사'로 편입된 회사가 스스로를 상장됐다고 자평하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미국자본에 팔린 캐피탈이나 저축은행이 '나 월스트리트 뉴욕증시에 상장됐어' 라고 우기는 격이다.

 

한편 배민 경영진들은 그동안 투자 회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에는 힐하우스캐피탈, 알토스벤처스, 골드만삭스, 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Exit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 배민은 사실상 외국주주 회사였으니 외국인들이 돈 내놔라고 하면 내줘야한다. 다른 유니콘들도 실상은 다 마찬가지다.

 

외국계 투자자금은 골드만삭스 400억원, 2016년 힐하우스캐피탈 570억원, 2018년 미국 세쿼이아캐피탈과 힐하우스캐피탈, 싱가포르투자청 4000억원 정도다. 7차례에 걸쳐 투자받은 총 금액은 5천억원으로 알려졌다. 단순 투자금 대비로는 10배 이익을 본 셈이다. DH 인수 전 우아한형제들의 1대주주는 힐하우스캐피탈이었고, 그 다음 미국계 알토스벤처스와 골드만삭스, 중국계인 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 다른 대주주였다. 토종 벤처기업이지만 국내 자본은 사실상 20%가 채 되지 않는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교적 초기에 투자한 알토스와 골드만삭스가 1조원에 달하는 거액의 엑시트에 성공한 것 같고, 지분이 많은 세쿼이아캐피탈과 힐하우스캐피탈도 상당한 차익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배달앱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경쟁이 심화하고 규제도 늘고 있어 지금 매각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1위라고 해도 사업이 흔들린 다음에는 매각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번 매각을 통해 주요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를 해결하고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아시아 시장 공략을 할 수 있게 됐다.

 

배달의민족이 경쟁 업체와의 인수합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고립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국내 배달앱 1위 자리를 굳히긴 했지만, 2위 요기요를 운영 중인 딜리버리히어로가 40여개국에 진출해 거래량 1위(중국 시장 제외)를 질주 중인 상황과 비교하면 좋은 상황은 아니다. 게다가 일본계 자본을 업은 쿠팡이 ‘쿠팡이츠’를 내세워 배달앱 시장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IT 사업체들이 잇따라 음식 배달 업계로 진출하면서 압박이 커졌다. 업계에선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인수합병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아한형제들과 DH는 50대 50 지분으로 싱가포르에 합작회사(Joint Venture)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한다. 우아DH아시아의 대표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맡고, 배달의민족이 진출한 베트남을 포함해서 DH가 진출한 아시아 11개국의 사업 전반을 총괄한다. 

 

국내에서는 배민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한다. 3대 배달앱 배민, 요기요, 배달통은 독자 사업을 유지하며 김봉진 대표가 빠진 자리에는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부사장이 담당한다. 독자사업을 유지하는 이유는 독점이슈를 피하기 위해서이고 김 부사장은 내년 초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으로 배민 CEO로 취임할 예정이다. DH는 "아시아 시장은 배달앱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업계 1위를 달성한 경영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것"이라고 밝혔다.

 

김범준 부사장은 내년 4월 적용 예정인 새로운 과금 체계에서 중개 수수료를 6.8%에서 5.8%로 낮췄다"면서 인수합병으로 인한 중개 수수료 인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전 세계 배달 앱 중 수수료율을 5%대로 책정한 곳은 배달의민족밖에 없다. 업주와 이용자 모두 만족해야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아는 만큼 인수합병을 했다고 수수료를 올리는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민 수수료는 서비스주문 건당 10%인데 그 중 배민 몫이 5.8%, 외부결제수수료 3.3%, 부가세 0.9% = 10%이다.

 

하지만 최종 관문은 남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사실상 독점 기업이 될 이 합병을 어떻게 해석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1위 배달의민족과 2위 요기요(배달통 포함)를 더할 경우, 시장점유율은 9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민 55%, 요기요 33%, 배달통 11% 순인데 까보나마나 이 점유율은 독점에 걸린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IT 플랫폼형 기업의 독점력을 살펴보겠다고 공언한 만큼, 공정위가 양 사의 합병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에서는 기업결합 신고서 내용을 꼼꼼히 살핀 후에 소비자 편익침해여부를 따져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공정위가 합병과 관련한 시장을 배달앱으로 한정하면 명백한 독점이지만, 만일 쿠팡을 포함한 전자상거래 전체로 보면 독과점이 아니다. 우아한형제들과 DH는 쿠팡의 배달앱 쿠팡이츠 점유율이 지금은 미미하지만 전자상거래 시장 전체로 보면 충분히 경쟁사라고 보는 입장이다. 공정위 심사는 최대 1년이 소요된다.

 

요기요는 1위 배민과 차별화를 위해 대형 프랜차이즈업체를 주로 공략해왔다. 그러나 이번 합병으로 더이상 프차업체를 우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년부터 치킨프랜차이즈 업체에 현행 7.7%인 수수료율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요기요 일반주문 수수료는 12.5%). 전국가맹점주 협의회는 자영업자들의 배달비, 광고비, 수수료 부담은 결국 소비자 가격상승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며 독점시장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Posted by 영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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