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경제학교 교수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2013년)

이 책에서 피케티는 매우 비판적인 관점으로 지난 2백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상세히 밝혔다. 피케티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산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환상을 허물어 버린다. 국가의 재분배 기능이 사라진 자유시장 자본주의에서는 비민주적인 소수 지배가 생겨난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피케티는 세습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그 대안으로 누진세 제도와 부유세 도입을 주장했다.

 

사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가 없는 제도다. 자본주의는 독점자본화되면서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몰리는 것이 필연이고 민주주의는 그와 반대로 모두가 1인1표씩 평등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상충할 수 밖에 없는 경제원리와 정치원리인데 두가지가 같이 시행되고 있다면 한쪽은 제대로 돌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증된 것처럼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초과하는 이상 (r>g) 자본주의의 부는 자본을 쥔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 시스템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쪽은 늘 그만큼의 부를 빼앗기고 양극화가 발생한다. 20년간 일해서 월급모은 사람과 그동안 강남 아파트의 가격상승으로 손쉽게 부를 부풀린 사람을 비교해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헐값에 노동을 할수록 손해다. 그러나 임금은 자본을 쥔 쪽이 결정하며, 극소수의 희소인력이 아니면 노동력에 대한 협상조차 할 수 없다. 모든 자본가에게 임금은 소소익선이며 따라서 늘 최소한의 임금만 지불하려고 한다.

 

피케티 교수는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영문판 출간 기념으로 모교인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열린 특강에서 '모두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나아가야 한다며 조세 정책을 주요 해법으로 제시했다. 부의 초집중을 막기 위한 부유세율 최고 90%주식 의결권 10% 제한 등 다소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포함되어있다. 기후위기, 금융위기, 사회위기를 해결하려면 시스템을 바꿔야만 하며 "소득세, 재산세 등으로 개인의 재산축적을 합리적인 선에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최상위 계층에 부가 급격히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가 단기간에 사유화를 겪으면서 소위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소수의 신흥재벌만이 큰 혜택을 봤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이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한 때 '만인의 평등'을 주장했던 국가들이지만 상속세와 같은 공정한 조세 제도 없이는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이 피케티의 진단이다. 

 

반대로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을 줄였던 국가들을 살펴보면 조세 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피케티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가 세금을 올렸다"면서 "특히 미국은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상위 소득세율을 매우 높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1930~1980년대 미국 평균 최고 소득세율이 80%가 넘은 시기에 미국 경제의 성장률과 생산성 역시 매우 높았고 "결코 높은 세율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물론 단순히 세금 때문에 성장률이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이 견고해지면서 공공부문과 인프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늘었고 결국 이 모든 것이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통의 규제나 과세가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 독점자본의 지배가 세계의 문제를 일으키며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주가 얼마나 많은 주식을 보유했는지와 관계없이 의결권을 10%로 제한하고 이사회 절반을 노동자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생각이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다보스 경제포럼에서 밝힌 견해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최태원은 기업 등 경제주체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닌 이해관계자의 공익적 가치를 증진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중시하며 기업의 가치를 주주에서 이해관계자의 것으로 넓힌다. 개별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정부 등 넓은 범위의 이해관계자의 공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피케티는 부유세와 주식 의결권 제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제한 등 자신의 주장이 실현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과 같이 "전혀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이전 시대에는 이같은 정책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버니 샌더스 의원이 자본주의의 본토 미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등 각국이 실시한 양적완화 때문에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그는 이탈리아가 영국에 이어 두번째로 EU를 탈퇴할 수 있으며, 제2의 금융위기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 결정론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 결집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평등했던 시기가 미래에도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피케티는 전망했다. 그는 미래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여 사회주의' 혹은 '21세기 사회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이른 시일 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Posted by 영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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