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 인터뷰

 

(편집본 + 의견 보충)

 

방역은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를 넘어서 감염병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다. 이 종합적 접근법을 훈련한 전문가들의 모임이 한국역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다. 두 학회는 2월10일 공동성명서를 낸다. “외국인 입국 제한은 국가간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썼다. 전문가들이 학회 공식 입장으로 중국 봉쇄론을 반박한 것이다.

 

중국봉쇄론의 근거는 두가지다.

 

첫째, 일찌감치 중국을 봉쇄했다면 코로나19 유입을 막았을 것이다. 이 주장은 좀 취약하다. 코로나19는 전파율이 높아 경제를 세계화한 한국이 국경 통제로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탈리아와 육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 스위스 역시 이탈리아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실질적 효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하루 4천명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데 그 중 천명이 한국인이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중국인만 막아봤자 바이러스가 막히지도 않을 뿐더러 중국인이 많이 사는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당시 감염률은 제로였다.  

 

질본에 따르면 31번 환자 전까지의 초기 유입 국적은 한국인이 중국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유입된 경우와 중국 국적의 사람이 들어와서 감염된 경우를 비교했을때 한국인 국적이 더 많았다. 당시 국내 체류 중인 ‘코로나 확진 중국 국적자’는 6명이었으며 “이중 2명은 공항에서 확인돼 곧장 격리, 2명은 일본에서 감염돼온 중국인, 나머지 2명은 한국인에게 감염된 중국인"이었다. 그렇다면 주 유입원인 (매일 1천~2천명씩 들어오는) 한국인을 모두 격리수용 또는 입국거부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현실 불가능이다.

 

두 번째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다. 중국 봉쇄로 코로나19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발병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어느 정도 늦추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감염병 유행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짧은 순간에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는 게 더 치명적이다.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면 코로나19에 대응하다가 다른 환자들이 죽어 나간다. 봉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산하고 늦추기 위해서, 중국 봉쇄는 필요했다. 의료 현장에서 과부하를 몸으로 겪는 임상의들이 이 논리를 적잖이 지지한다.

 

그렇다면 한국역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는 왜 중국 봉쇄론을 거부했을까. 황승식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는 역학자다. 역학은 ‘질병이 분포되는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감염은 감염내과의 분야에 가깝지만, 감염병 유행은 전형적인 역학의 분야다.

 

처음에 황 교수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우리가 아직 코로나19의 유행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중국 봉쇄론의 옳고 그름을 과학으로 따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마음을 바꿔 2월26일 〈시사IN〉과 만났다. 과학자가 아니라 방역 정책의 관점에서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 둘이 다른가요?”

“다릅니다. 그리고 그게 방역이라는 일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중국 봉쇄론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방역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방역과 의료는 다릅니다. 의료 전문가가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그게 방역 정책이 되려면 구체적이고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플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방역 책임자는 의료도 알아야 하지만 또한 정책과 제도와 법률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국가가 가진 자원을 어디서 어떻게 동원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로부터 흥미로운 명제가 나온다. 방역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다. 신종 감염병은 불확실성 투성이다. 불확실성을 앎으로 바꾸기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속성을 방역전을 시작한 한 달 전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동시에, 불확실성이 앎으로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코로나19를 지금보다 적게 알던 지난 한 달 동안에도 중요한 결정을 반드시 내려야 했다.

 

불확실성은 방역의 본질적 조건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은 아주 고전적인 의미로 정치의 기능이다. 그래서 황 교수는 말한다. “방역은 본질적으로 과학인 동시에 정치입니다. 과학만으로도 정치만으로도 안 돼요. 그 둘이 제대로 조화되어야 방역입니다.”

 

과학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방역 책임자는 그렇지 않다. 그는 불확실성을 안고 끊임없이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 과학자 황승식은 중국 봉쇄론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단단한 앎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역 연구자 황승식은, 중국 봉쇄론이 왜 나름의 논거가 있음에도 결국 방역의 선택지가 되지 못하는지 짚어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방역의 본질로 우리를 안내한다.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방역의 출발입니다.” 적이란 바이러스의 정체를 말한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앎으로 바꿔가는 작업이다. 그래야만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야할지 더 잘 알 수 있다. 우선 바이러스의 종류를 알아야 어떤 속성을 가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라면, 사스와 메르스의 선례를 따라 비말 감염(침 등 작은 물방울을 타고 감염되는 것)이 주된 경로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공간 격리가 좋은 대책이 된다. 잠복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 격리 기간이 14일이라는 판단은 잠복기를 대략이라도 안 다음에야 내릴 수 있다. 전파력과 치사율을 알면, 바이러스가 얼마나 잘 퍼져나가고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방역 책임자는 이런 정보와 주어진 자원을 조합해 매 순간 판단을 내린다. 시점에 따라 손에 쥔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방역 책임자의 관점에서 중국 봉쇄라는 정책 옵션을 만져볼 것이다. 우리는 정보가 가장 풍부한 2월27일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았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장면 1. 2월27일(현재 시점)

바이러스 종류:코로나(불확실성 없음) 잠복기:최대 14일(불확실성 낮음) 전파력 높음-치사율 낮음(불확실성 낮음) 무증상 감염 존재(불확실성 낮음)

 

“지금 시점에서 중국 봉쇄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테이블에 올라올 가치도 없습니다. 국내에 지역감염이 시작되었는데 중국을 봉쇄하는 실익이 사실상 없어요.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중국 봉쇄라는 아이디어가 훨씬 더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왜 그런가? 코로나19는 전파력이 아주 높으면서 치사율은 상당히 낮다. 즉, 아주 활발하게 감염자를 늘려가지만, 대부분 경증에 그치고 사망자는 잘 나오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속성상 이 둘은 일반적으로 트레이드오프 관계(어느 한쪽이 높아지면 다른 쪽은 낮아지는 관계)가 성립한다. 즉, 치명적일수록 전파력은 제한적이고, 전파력이 셀수록 사람은 덜 죽인다. 너무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숙주를 다 없애버려서 널리 퍼지기가 어렵고, 숙주가 살아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바이러스일수록 널리 퍼지기 쉽다.

 

치사율이 높고 전파력이 낮은 바이러스가 적일 때는 최대한 봉쇄 전략(국경 검역 강화 등 원천 차단 전략을 뜻하는 방역 용어. 중국 봉쇄론은 봉쇄 전략의 극단적 형태다)을 편다. 전파력이 낮아서 봉쇄가 성공할 가능성도 더 높고, 치사율이 높으므로 봉쇄의 필요성도 더 크다. 코로나19의 속성은 정반대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사촌 격인 사스나 메르스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봉쇄 전략이 안 먹히는 적이다. 치사율이 낮아서 봉쇄의 필요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코로나19가 무증상 감염을 일으킨다는 정보 역시 봉쇄 전략을 안 먹히게 만든다. 봉쇄 전략의 핵심 무기는 강력한 공항 검역과 감염자 동선 추적이다. 무증상 감염자는 공항 검역을 무사통과하므로 봉쇄에 구멍을 뚫는다. 봉쇄망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자원을 중증 환자 치료와 감염 취약계층 관리로 돌리는 대응이 필요하다. 방역에서는 이를 봉쇄 전략과 대비하여 완화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흥미로운 사고 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만약 코로나19가 이런 속성이 있다는 정보를 1월부터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질병관리본부(질본)도 봉쇄 전략은 최소한으로 펼치면서 완화 전략을 초기부터 준비했을 겁니다. 이런 바이러스는 봉쇄로 잡을 수 없으니까 봉쇄망이 뚫릴 것이라고 미리부터 대비했겠지요. 정보를 알고 짜는 전략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월에 질본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사실만 확실하던 시기다. 이때는 전파력·치사율 관계가 사촌 격인 사스와 메르스 사이 어디쯤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더욱이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는 치사율이 상당히 높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당시 우한에서는 한국처럼 의심환자를 전수조사하다시피 검사한 게 아니라 상태가 나쁜 환자들만 병원에 왔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즉, 유행 초기의 경증환자나 무증상 감염자는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치사율이 실제보다 높게 계산되던 시기다.

 

1월의 질본은 이 정체불명의 신종 감염병이 치사율이 높을 가능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봉쇄에 집중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최선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판단은 타당했다. 방역에서 불확실성이 숙명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다.

 

장면 2. 2월13일(대통령 “곧 종식” 발언)

바이러스 종류:코로나(불확실성 없음) 잠복기:최대 14일(불확실성 낮음) 전파력 높음-치사율 낮음(불확실성 보통) 무증상 감염 존재(불확실성 보통)

 

“대통령의 ‘곧 종식’ 발언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지요. 이 바이러스가 그런 게 아닌데, 봉쇄한다고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메시지가 나갔을까 생각했어요.”

 

2월13일은 ‘과학과 정치의 조화’라는 방역의 원리가 흔들린 중요한 장면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 당국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역은 국민 생명이 걸린 안보 이슈다. 대통령은 방역의 최종 책임자다. 2월13일 발언은 방역 전문가들이 ‘전형적 메시지 실패’로 손꼽는다. 닷새 후에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터져서만은 아니다. 미래를 모르는 당시 시점에서 보아도, 과학이 이 발언을 지지하지 않아서다.

 

이때는 코로나19가 무증상 감염을 일으킨다는 가설이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되던 시기다. 전파력·치사율 트레이드오프 관계도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즉, 코로나19가 기본적으로 잘 봉쇄되지 않는 적이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바이러스는 추이만 보고 ‘종식’을 말하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봉쇄망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과학은 예측한다. 그런 장면에서 최고 책임자가 “곧 종식”을 말하면서 과학을 한 구석에 제쳐뒀다. 대구에서의 집단감염 발병 이후로 이 메시지는 두고두고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

 

장면 3. 1월22일(북한, 중국 봉쇄)

바이러스 종류:코로나(불확실성 없음) 잠복기:최대 14일(불확실성 낮음) 전파력 높음-치사율 낮음(불확실성 높음) 무증상 감염 존재(불확실성 높음)

 

“1월22일에 북한이 중국 국경을 봉쇄합니다. 1월28일에는 의협이 중국 전역을 거쳐간 외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합니다. 2월2일에는 대한감염학회가 같은 주장을 합니다. 이 열흘 정도가 중국 봉쇄론이 가장 진지하게 제기된 시기이자, 이 카드를 NSC에서 검토할 만한 가장 유력한 시기입니다.”

 

황승식 교수는 왜 이 시기를 지목했을까. 첫째, 불확실성이 지금보다 높았다. 전파력·치사율 관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둘째, 국내 감염자가 폭증하기 전이어서 봉쇄의 실익이 지금보다 크다. 셋째, 중국의 감염 추세가 매우 가팔랐던 시기다.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방역 책임자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을 평가할 만한 정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반면 봉쇄가 가져다줄 실익은 지금보다 크게 느껴진다.

 

이제 중국 봉쇄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보자. 우리의 방역 책임자는 곧 중대한 제약에 직면한다. 중국 내의 한국인까지 모두 봉쇄 대상으로 올릴 수는 없다. 방역의 목표가 국민 생명 보호라면, 내국인을 봉쇄 대상에 포함하는 방역은 있을 수 없다. 내국인 입국은 허용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여서 토론의 여지가 없다. 방역은 이런 의미로 가장 고도의 정치 행위다.

 

국적은 바이러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방역 원리상 내국인 입국자도 격리 대상이다. 우한 교민 702명처럼 시설을 마련해 격리하거나, 자가격리를 권고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이제 우리의 방역 책임자는 입국자 통계를 살펴본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1월 초에는 내국인 입국자가 하루 1만3000명 수준이었다(외국인은 1만7000명). 유행 이후인 2월3일에는 3090명까지 떨어진다(외국인은 8291명). 최소한인 3000명으로 생각해보자. 격리 기간이 14일이기 때문에 4만3000명을 격리할 공간이 ‘최소한’ 필요하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 자가격리를 권고하는 수밖에 없는데 수만 명이 자가격리를 잘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방역 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방역이 한정된 자원을 다루는 일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이다.

 

이제 중국 봉쇄 카드의 매력이 극적으로 떨어진다. 방역 책임자는 ‘중국 전면 봉쇄’와 ‘국경 개방’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다. 중국발 입국자 중 30~40%에 달하는 내국인은 그대로 들어온다. 격리수용도 불가능하다. 이 시기에 중국 봉쇄를 검토하는 방역 책임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실제로는 이런 것이다.

 

‘잠재적 바이러스 보유자’의 유입 물길은 좀 줄지만 여전히 열린 채 국경 봉쇄로 경제·외교·명분상 손실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카드와, 입국자 관리·등록을 강화하는 등 무리 없는 방법으로 유입 물길을 관리하면서 국경 개방과 국제 공조를 유지하는 카드. 이 둘 중의 선택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좁히고 나면, 중국 봉쇄 선택지는 비용은 크고 확실한 반면 이득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어서,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타당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황승식 교수가 다시 강조했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방역 정책이 되려면 구체적이고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 봉쇄론은 첫눈에 매우 과학적으로 보이는데, 감염원을 차단하는 게 감염병 관리의 기본이라서 그렇습니다. 질본의 전문가 중 몇몇이 기본 원칙을 따라 중국 봉쇄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아이디어는 불확실성과 한정된 자원이라는 기본 조건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중국 봉쇄론 중에 이 두 가지 제약을 정직하게 다룬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다른 정부조직을 설득할 수가 없고, 따라서 방역 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이걸 ‘전문가 질본’ 대 ‘정치인 정부’라는 대립으로 봐서도 안 돼요. 질본은 현장 책임자이지 방역 정책 전체의 책임자가 아닙니다. 국경 봉쇄와 같은 중대한 정책적 판단은 당연히 선출직 정치가의 몫이죠. 선진 민주국가 중에 그런 권리까지 질본에 주는 나라는 없습니다. 축구장에서는 메시가 최대한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도와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메시가 전술을 정하고 선발 명단을 짠다면, 그 팀은 뭔가 이상하게 굴러가는 거죠.”

 

이제 우리는 “방역은 과학과 정치의 조화다”라는 명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방역 책임자는 과학적 지식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싸우며 한정된 자원을 최선으로 배분하려고 매 순간 분투하는 사람이다. 자명한 답은 있을 수 없고, 단지 제한된 정보에 비추어 그 시점에서 타당한 답이 있을 뿐이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무기이고,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업 그 자체를 부르는 말이다. 두 무기를 조화롭게 쓰지 못하면 방역 책임자의 자리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보통 정반대로 생각한다. 과학적 지식이 알려주는 자명한 해법이 한쪽에 있고, 그걸 왜곡하는 정치가의 욕망이 반대편에 있다. 이 허구적인 대립 구도에서, 전문가는 국민 생명을 위한 올바른 답을 알고, 정치가는 총선이나 한·중 관계 같은 다른 목표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니 방역이란 올바른 답을 아는 전문가에게 전권을 쥐여주는 일이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면, 이를테면 중국 봉쇄와 같은 ‘올바른’ 선택이 나오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가가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 봉쇄론을 둘러싼 논쟁의 바탕에는, 이처럼 극적으로 다른 두 세계관이 깔려 있다.

 

방역은 정치가 지나치게 작동할 때도 실패하지만(문 대통령의 “곧 종식” 발언은 좋은 예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실패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이 좋은 사례다. 이것은 우리가 방역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자, 정치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방역은 국민 생명이 걸린 일이므로 안보에 속하고, 안보는 가장 고도의 정치행위이자 정치의 최상위 목표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프랑스 전시내각을 이끈 수상이다. 그는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장군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학자들이라면 이 문장을 곧바로 이렇게 바꿀 것이다. 방역은 너무 중요해서 의사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먼 미래에 코로나19의 감염 경로와 피해 규모를 우리가 깊이 이해하여 불확실성이 앎으로 대체된 시점에, 중국 봉쇄가 실제로 유효했다고 밝혀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게 과학자 황승식이 최초에 인터뷰를 거절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주어진 정보로 보면 중국 봉쇄 대신 국경 개방을 유지한 선택은, 최선일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타당하다. 1월의 질본이 봉쇄 전략에 집중한 선택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타당한 것과 같다.

 

우리는 아직 국경 개방을 유지해서 얻는 본질적 이익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무역이나 외교상의 이익 말고, 방역에 주는 이익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국제공조와 다자주의 원칙을 내세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국경 봉쇄는 세계보건기구의 국제보건규칙(IHR) 위반이다. IHR은 국제법 지위를 가지므로, 지금의 국경 봉쇄 광풍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저명한 의학저널 〈랜싯(LANCET)〉은 지적한다. IHR은 이상주의자의 몽상에 휘둘린 결과물이 아니다. 감염병과 싸우려면 국제공조와 다자주의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역사의 교훈 때문이다.

 

과거 유럽 전역의 콜레라 대처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보 공조다. 방역이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므로 정보의 투명성은 감염병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이것은 국제공조·다자주의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황승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한에서 돈다는 괴질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즉시 공유하느냐 아니냐가 한국 같은 이웃 나라의 방역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다자주의와 국제공조가 훼손되면 무역이나 외교관계까지 갈 것 없이 방역 그 자체가 훼손됩니다.”

 

누군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순간 국제공조는 무너지고, 더욱이 코로나19와 같이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라면 최악의 결과까지 일으킬 수 있다. 일례로 마스크의 원료나 MB필터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규격이 다른 타국 MB필터는 수입해온다 해도 마스크 제조에 바로 쓸 수가 없다. 국제 공조를 깬다면 중국이 '우리 쓰기도 부족하다' 식의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원료 수출금지령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입국금지한다면 타국이 우리나라를 입국금지시켜도 항의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이 '너희도 했지 않느냐' 하면서 우리나라를 일절 봉쇄해버린다면 그때의 타격은 헤아리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한국만 코로나 청정지역이고 주변 모든 국가가 감염국이라고 해보자. 과연 세계 경제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혼자 코로나 청정국으로 남을 수가 있을까? 폐쇄 경제를 하는 북한조차 코로나를 막진 못했다. 주변국에서도 모두 코로나19가 퇴치되어야 우리나라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요약하면 이것이다. 과학적으로 봉쇄가 효과가 있다면 봉쇄를 우선해야한다. 그러나 봉쇄로 차단이 되지 않는다면 보다 타당한 해결책을 실행해야한다. 현재의 가장 타당한 해결책은 전파 억제와 피해 최소화다. 의료관리로 대처할 수 있는 범주까지 발병률을 묶어 두면서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 개발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중수본, 자문 특별보좌단은 이혁민 연세대세브란스병원 교수, 최보율 한양대 교수,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동현 한양대 교수,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원문)

https://news.v.daum.net/v/20200303130613440

 

Posted by 영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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