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국민기업으로 추앙받는 발렌베리 (Wallenberg) 가문은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에 의해 창업돼 무려 5대에 걸쳐 현재까지 160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수장은 마르쿠스 발렌베리 (Marcus Wallenberg)와 야콥 발렌베리 (Jacob Wallenberg) 회장이다. 마르쿠스, 야콥은 그들의 선대가 쓰던 이름이기도 하다.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해군 장교로 제대한 뒤 1856년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SEB)을 창업한 것이 발렌베리 기업가문의 시작이다.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현재는 인베스터라는 지주 회사가 SEB, 일렉트로룩스, 에릭손, 사브, ABB 등 스웨덴의 주요 기업 19곳을 거느리고 있으며, 100여 개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주회사는 인베스터지만, 이를 지배하는 곳은 발렌베리 가문의 공익재단인 크누트&앨리스 발렌베리재단이다. 창업 2세대인 크누트와 앨리스 부부는 후손이 없어 자신들의 재산 모두를 자신들의 이름을 딴 공익재단에 기부했고, 이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의 매출은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약 30%에 달하며 고용한 총 노동자 수는 스웨덴 인구의 약 4~5%나 된다.

 

 

 

발렌베리그룹이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이후 5대째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음에도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룹 이익금의 8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20%는 재단에, 80%는 사회에" 가 발렌베리의 모토다. 랑스강넬릭트(landsgagneligt)  '스웨덴을 위해' 스웨덴식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할 수 있겠다. 


발렌베리 재단의 수익금 역시 전액 기초기술과 학술지원 등 공익적 목적에 활용한다. 발렌베리 가문 오너 개인들의 지분은 미미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오너 일가의 주식에 일반 주식의 최대 1000배 (현재는 최대 10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부여받고 있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적 노사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노사간의 대타협의 결과다. 기업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는 그 기업가문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형태를 취한다. 한국도 언젠가는 이 대타협의 장을 열어야한다고 본다.


발렌베리 가문이 후계 경영자를 선택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발렌베리 가문은 CEO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할것

△부모 도움 없이 해외 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을 두고 있으며 이는 창업주의 조건과 같다. 아빠 찬스, 할아버지 찬스같은거 쓰지말란 얘기다.

 

후계 경영자들은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발렌베리 경영의 또 하나의 특징은 '투톱 경영체제'이다. 한쪽은 금융, 한쪽은 제조업을 맡는 형태로 한쪽의 독단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경영권은 세습하지만 계열사 경영 자체는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하는 '소유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계속 지키고 있다. 백년지계의 첫 단추를 아주 잘 꿴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재벌기업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지지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렌베리 기업은 산업과 금융을 포괄하는 거대한 산업금융 복합체이며 지배가문이 지분에 비해 훨씬 큰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가족경영 구조로 이는 재벌인 삼성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발렌베리의 개별 기업들은 법적,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독립돼 있어,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지원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비상장 기업주식을 가문 구성원이 저가로 취득했다가 상장할 때 엄청난 차익을 본 사례도 없다.

 

편법 합병이나 재무제표 주가조작으로 소유권을 확보하는 재벌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세계대전 때는 국민들이 생활필수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자 밀수에 가깝게 들여와서 낮은 가격에 공급한 역사도 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본사를 해외로 옮긴 이케아와 달리 발렌베리는 이러한 역사적 활동들로 확보한 사회적인 신뢰가 뿌리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

 

발렌베리의 핵심구성원은 계열사의 이사회 의장이나 CEO 혹은 이사로 등재돼 있다. 단,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만 의사결정을 하며 “권력을 행사하면 그만큼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재단을 통해 가문 구성원이 권력이나 재산을 축적하지 않는다. 또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권리를 존중하는 등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경영으로 사회와 함께 커온 전통이 있다. 

 

 

발렌베리 가문으로부터 삼성이 배우려는 노력은 좋다. 이재용 부회장이 벤치마킹하는 모습도 최근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그러나 160년 역사적 뿌리와 근본 철학이 달랐다는 점부터 인정을 해야한다. 오래된 존경이란 '올바른' 철학과 실천이 쌓일때만 나온다.

 

또한 전통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대가 바뀌어도 지켜온 것에 그 존경가치가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로부터 정말 배우고 싶다면 노동자와 함께,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것도 기꺼이 사회에 내놓겠다는 철학의 전환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세대가 바뀌어도 이 전통은 지켜진다는 믿음이 뿌리내려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순한 흉내내기 그 이상의 것은 어려울 것이다.

 

Posted by 영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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