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제아무리 부유해도 사회 전체가 빈곤하다면 그 개인의 행복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사업이다."<호암자전>
"자기만 잘 살아보겠다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기업이 있는 것이다. 국가관, 사회관이 없는 사람은 기업인이라고 할 수 없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람, 매점매석을 하는 장사꾼, 투기를 일삼는 사람, 사기행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업가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중략)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가느냐에 있다."
자서전이 통상 자기미화, 과거미화의 장치로 쓰인다는걸 감안하더라도 말 자체는 곱씹어볼만한 내용이다. 특히 어떤 인생에도 낭비란 있을 수 없다, 설령 놀고먹고 백수 방랑방황을 했더라도, 지나보면 모든게 영향을 주고 관련되어 도움이 된다ㅡ이건 상당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첫 사업은 정미소다. 지인 2명과 함께 마산에서 '협동정미소'(1936년)를 차렸다. 경남 일대의 농산물이 모이던 곳이라 장사가 잘됐다. 정미소 곡식을 실어나를 화물운수업에도 진출해 성공했다. 일본인이 경영하던 트럭 회사를 인수해 궤도에 올려 놓았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첫 사업이랄 수 있는 정미소와 운수업에서 대박을 낸 그의 다음 행보는 땅이었다. 산업은행의 전신인 식산은행에서 돈을 빌려 김해평야 일대의 땅을 사들여 그의 나이 27세(1937년)에 200만평을 소유한 대지주가 됐다. 땅매입 대금 대부분은 은행에서 나왔다.
그야말로 승승장구 무서울게 없던 20대였다.
<호암자전>에는 은행 금고를 개인 금고로 착각할 정도로 기고만장했던 시기라고 당시를 표현했다. 훗날 이병철이 말한 기업인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댄다면, 손쉬운 돈벌이 빠진 20대의 이병철은 기업인으로서 낙제점이다.
행운 뒤에는 불행이 따른다. 이병철도 예외는 아니다. 성공에 취해 들떠있던 1937년 여름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통보가 그에게 날아왔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비상조치의 일환으로 은행 대출 중단조치를 발표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남의 돈으로 부동산을 산 사람에게 대출규제는 치명타가 된다. 땅값은 폭락하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일대혼란이 벌어졌다.
이병철은 전답을 헐값에 팔고 정미소와 트럭회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이 일로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그 뒤의 행보다. 마산 사업을 정리한 이병철은 두달간 부산·평양·신의주·원산·흥남부터 중국 베이징·칭다오·상하이 등을 둘러봤다. 실패 자체에 허우적대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새로운 사업 모색에 나선 것이다. 그러고는 반년 뒤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다시 삼성상회를 시작했다. 1938년 3월1일, 지금의 삼성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나 똑같은 결말을 맺지는 않는다. 이병철에게는 사업 실패보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그 시기가 괴롭지만 가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단 뜻을 세운 이상 실패는 장애물일 뿐 넘지못할 벽은 아니다.
VS
무노조가 유훈이던 삼성이 3대째에 와서 특히 2018년부터 기조가 달라진듯 하다.
지배구조 측면에선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수단으로 활용되던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끊었다.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던 사안에는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해 10년 넘게 지속되던 반도체 백혈병 분쟁을 끝내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김기남 부회장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했고 회사 홈페이지에는 사과문을 올렸다.
80년간 유지해오던 무노조 정책도 깼다. 놀라운 일이다.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동시에 협력업체 직원 8700여명을 직접 고용했다. 삼성의 성장 과정에서 생긴 사회적 그늘을 하나둘 걷어내는 시도와 보상을 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대한민국 1등 대기업으로서 작년에 숙제라고 말씀드린 일자리 3년간 4만명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8월 경제활성화방안 차원에서 향후 3년간 180조원 규모의 투자와 신규 일자리 4만개 창출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제품과 서비스로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상생과 사회공헌, 사회적 난제 해결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도 이 부회장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을 멈추게 하지 않는 힘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믿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00년 기업 삼성'을 3대째의 모토로 삼은것인데
지난 50년이 성장을 위해 앞을 보고 뛰어온 시기라면 앞으로 50년은 사회와 함께 가는 전략을 펴겠다는 의미다. 지난 10일 열린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도 이 부회장은 상생·협력·건전한 생태계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그러고는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확인했다. 여러번 반복 언급한걸로 보아 단순한 립서비스는 아니지 싶다.
삼성은 가전에서 반도체, 반도체에서 스마트폰으로 관련산업을 하나씩 징검다리삼아 발전해왔다. 선대의 성공방정식을 따라 파운드리로 다음 10년 타겟을 잡은 모양새인데 방향자체는 나쁘지 않다. 앞으로 10년 내에 자동차를 필두로 AI 기기는 모든 생활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AI 기기들에 들어갈 방대한 AP칩 시장은 삼성이 잡아야할 최중요 시장임에 틀림없다.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한다'는 말의 실천 여부는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협력사, 중소기업에까지 이익의 과실을 나누고 장기적 성장의 뿌리를 튼튼히 하겠다는 전략이라면 그것 또한 좋은 방침이다. 사회공헌 재단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자체 인재교육과 중소기업 인력풀 확보를 위한 지원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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