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인간이 잘하는 일과 컴퓨터가 잘하는 일의 영역이 다르다.
언젠가는 컴퓨터에게 대부분의 영역을 내주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체회로를 모사할 수 있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구현체가 나온 이후의 일이다.
추상적인 예술, 문화, 창작의 영역을 논하기 이전에
컴퓨터가 더 잘할 것 같은 운전, 게임조차도 현재 인간이 훨씬 우월하다.
물론 바둑이나 장기, 체스처럼 문제공간의 범위를 한정시킬 수 있는 보드게임은 컴퓨터가 더 잘 푼다. 문제공간의 X,Y 좌표가 고정되어있고 경우의 수는 많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인 문제가 바로 컴퓨터의 영역이다. 문제공간 또는 입력 자체를 formulate하기 힘든 게임은 컴퓨터가 풀기 어렵다.
우주에 인간의 두뇌만큼 복잡한 물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대강 1000억 개의 뉴런과 그 1000~1만 배 정도의 시냅스(뉴런 사이의 연결)가 있다. 뉴런과 시냅스는 아직도 정확히 이해되지 않은 복잡한 알고리즘에 따라 전기 신호(펄스)를 발생시켜 의식과 기억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두뇌는 대강 1초에 1경(10^16) 번 전기신호를 만든다. 뉴런·시냅스 등 물리적 존재들이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라 작용한 결과다. 어떻게 그런 작용들이 모여 의식 또는 마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철학자·심리학자·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과제였다. 오늘날에는 이 문제가 많은 물리학자나 컴퓨터 과학자의 수입원이 됐다.
현재 인류가 보유한 디지털 데이터의 총량은 대강 50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1조 GB) 쯤이다. 노트북PC에 내장된 1테라바이트짜리 하드디스크 500억 개를 채울 양이다. 데이터의 대부분은 전 세계 600곳 정도의 데이터 센터에 보관돼 있다. 이 데이터 센터들은 대강 원자력발전소 50~60개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
자율주행보다 효율적인 인간 운전자
이것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다. 그런데 데이터양이 폭증하고, 이를 이용해 소위 ‘빅데이터 서비스’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빅데이터의 속성 때문에 데이터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빨리 에너지 소모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최대치로 예측하면 20년 뒤에는 데이터양이 지금보다 10만~100만 배쯤 늘어날 것이다. 이만큼의 데이터를 유지하고 이용하려면 발전소 1000억 개가 필요하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뭔가 전혀 다른 방식의 컴퓨터·데이터 사용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개 컴퓨터를 사용할 때 전기 사용량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이런 문제는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해결책이 엿보이기는 한다. 바로 사람의 두뇌를 모사하는 것이다.
전기자동차를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하면, 사람이 직접 운전할 때에 비해 똑같은 전기량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약 절반으로 줄어든다. 자율주행을 할 때는 센서 등이 모은 수많은 주위 상황 정보를 자동차에 탑재된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컴퓨터가 처리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기계보다 훨씬 효율적인 컴퓨터라는 뜻이다. 왜 그럴까.
과학자들이 눈에 대해 파악한 바를 살펴보면 답을 짐작할 수 있다. 시신경은 많은 정보를 먼저 적당히 처리해서, 적당한 양의 정보만 두뇌의 시상(감각 정보를 제일 처음 처리하는 부분)으로 보낸다. 여기서 ‘적당히’란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이 인도에 있는 사람인지, 같은 차선에 있는 자동차인지, 아니면 배경으로 있는 건물인지를 파악한, 추상화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두엽을 포함한 두뇌는 이를 바탕으로 계속 갈 것인지, 차를 멈출 것인지 결정한다.
즉, 우리 몸의 감각 기관은 입력단에서 raw 정보를 적당히 선처리한 다음 두뇌에 전달함으로써 두뇌의 부하를 줄여주는 원리다.
그러나 자율주행차에 달린 많은 센서들은 수집한 온갖 정보를 모두 중앙처리장치로 보낸다. 이래서는 사람처럼 효율적인 주행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시신경과 비슷하게 연산 기능이 센서에 포함된 소위 ‘스마트 센서’를 개발하는 것이 컴퓨터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다.
인간이 현재까지 개발한 컴퓨터와 자연이 개발한 두뇌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두뇌가 특히 인지의 영역에서 뛰어나다. ‘인지’란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는 성장함에 따라 이런 기능이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인지 또는 판단에 관한 문제에서 컴퓨터는 ‘정답’을 찾는 반면 두뇌는 ‘최선’을 찾는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먼저 심리학자·뇌과학자·신경과학자 등 뇌와 집적 접촉하는 연구자들의 구조 규명과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적당한 수학적 모델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뇌의 특정 기능에 대한 수학적 모델이 나오면, 이를 컴퓨터 공학으로 포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알고리즘·네트워크 등의 소프트웨어적 구현과 실제 반도체 하드웨어 구현이 되면 베이스가 만들어진 것이고 그 다음 이 위에 응용소프트웨어를 얹을 수 있다.
이 또한 이론적 순서일뿐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이런 것이 이뤄질까. 10년가량이면 실제 사람 코 정도 에너지를 쓰면서 인간의 후각 등을 정확히 모사하는 반도체 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두뇌는? 아직은 답이 없다. 반대로 감각을 모사하는 반도체 칩이 발전해서 감각 기능의 상당 부분을 이해한다면, 이를 이용해 두뇌의 기능을 역추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의식 또는 마음이 반드시 탄소 기반의 생물체에서만 발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생화학적으로는 대형 합성분자를 만들기 쉬운 탄소 기반이 유리하지만 실리콘 기반의 물리적 존재에서 의식을 만들지 못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물론 아직 의식 자체를 이해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고, 이런 문제가 단시간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인공적인 피조물이 의식을 발현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은 과학자·기술자들에게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두뇌는 진실을 찾지 않는다
또 하나,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결코 현실을 있는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있는그대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인간몸에 장착된 스마트센서가 두뇌에 전달되기도 전에 정보를 상당부분 걸러버리기 때문이다. 일상의 쉬운 예로 착시효과, 보호색 효과, 파티 칵테일 효과 등이 있다. 이러한 단순한 색깔이나 소리 뿐 아니라 문제의 선악, 호불호 판단도 사전에 걸러지는 일이 많다.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것, 자기 편향에 빠진다는 것은 인간의 스마트센서와 두뇌가 합작한 속임수 행각에 가깝다. 답이 아니라도 자기에게 효용성만 있으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인체의 이런 불완전함을 인지하고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피드백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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